국수를 먹을 때마다 설렌다는 사람을 알지요.
거의 매일 국수를 먹으면서도 그래요.
먹을 때마다 잔치 같다나요.
돈이 많든 적든 남자든 여자든 아이든 노인이든
국수를 먹는 순간엔 왠지 평등한 느낌이 들어요.
잔치국수냐 냉면이냐 막국수냐 스파게티냐
어떤 것이 맛의 갑인지 따지는 게 무슨 소용이예요.
이렇게 달궈지기 시작하는 날들에는
다정하게 국수나 한 그릇씩 나눠 먹으면 되지요.
그것으로 충분하고 말구요.
늦은 점심으로 밀국수를 삶는다
펄펄 끓는 물속에서
소면은 일직선의 각진 표정을 풀고
척척 늘어져 낭창낭창 살가운 것이
신혼 적 아내의 살결 같구나"
-이재무<국수>
아유, 국수 돋아.
읽는 순간, 기분좋은 문장들이 있어.
노인을 붙잡아놓고 길자는 국수를 맙니다
노독이 뿔처럼 여문 저녁 기슭에 눈이 내립니다
국수 한 그릇을 비우는 동안 노인은 고개 한 번 들지 않습니다
(…)
겨울이 지나면 국수집 길자네도 없습니다
-김병호<재개발지구>
껌 파는 노인, 시장하셨나 보다.
강아지 같은 나를 키워준 손들이 모였구나
(…)
마침내 마당 한쪽에서 배추며 부추 부침개를 부치고
홍두깨로 민 국수를 삶고
감자송편을 찌고
시래기국을 끓이는 잔치가 벌어지는구나
-맹문재<벚꽃에 들어앉다>
나를 아직도 강아지 같은 존재로 보는
그런 손들 틈에 섞여서 잔치하면 얼마나 행복할꼬.
커튼을 하얗게 빨아 햇볕에 널고
멸치국물로 국수를 후루룩 말아 먹고
욕실의 신은 거꾸로 돌려놓으면서
-하재연<카프카의 오후>
그런 오후도, 혹은 그런 오후면 좋겠어.
날씨 좋고, 배 그득하고, 집안 정갈하고.
마음 절로 개운하겠다.
오지의 어디쯤, 등 굽은 길을 걸어오신 듯한 스님 한 분
국숫집에 드셨다. 막국수 한 그릇 시키고 망연히 앉아
문 밖에 내다보는 눈길이 몇 겹의 산을 넘고 또 넘는지 고요하다
-김창균<메밀국수 먹는 저녁>
혼자서 고요하게 국수 한 그릇 비우던 어느 날의 기억.
평상이 있는 국수집에 갔다
붐비는 국수집은 삼거리 슈퍼 같다
평상에 마주 앉은 사람들
세월 넘어 온 친정 오빠를 서로 만난 것 같다
국수가 찬물에 헹궈져 건져 올려지는 동안
쯧쯧쯧쯧 쯧쯧쯧쯧,
손이 손을 잡는 말
눈이 눈을 쓸어주는 말
-문태준<평상이 있는 국수집>
큰 푸조나무 아래 평상이 있는 국수집이라는데 뭘 더 바래.
삶이, 그런 국수집 같은 시간이길...짧게 기원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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