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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수의 '마음詩처방'

아아, 밥이여, 밥 같은 그대여!

‘내 삶에서 가장 잊을 수 없는 밥상’을 떠올리다 보면 

내가 어떤 사람인지 극명하게 깨닫게 됩니다. 

육하 원칙을 따로 배운 바 없어도 그 순간이 

4D 영화보다 더 생생하게 촉각 후각 청각 미각으로

기억됩니다.   


그런 순간에 밥벌이의 지겨움이나 밥먹는 일의 지루함은 

그냥 관념에 불과합니다.  

온 우주가 밥 안에 들어 있어서 그렇습니다. 


밥이 목숨이고 사람이 밥이다, 라는 말이

괜히 나왔을라구요. 





"밥 한 숟가락

목으로 넘기지 못하고

사흘 밤낮을

꼼짝 못하고 끙끙 앓고는


그제야 알았습니다.

밥 한 숟가락에 기대어

여태

살아왔다는 것을"

-서정홍<밥 한 숟가락에 기대어>


밥 한 숟가락에 기대어 사는 목숨이라는 걸 아는 순간, 

삶에 대해 얼마나 착해 지게요.





"돌이켜보면 흰 쌀밥에 왜간장을 넣고

살살 비벼 먹던 때가 따듯한 것 같다

뒤돌아보면 시커먼 보리밥에 고추장을 넣고

싹싹 비벼먹던 때가 얼얼한 것 같다"

-박만진<비빔시를 쓰고 싶다> 


그런 밥이라야만 제일 맛있다는 의미는 아닐 거야.  

'원형'이 가진 힘 혹은 ‘본질’의 속성이랄까. 

밥이 본래 그러하듯. 





"나이 쉰다섯에 과수가 된 하동댁이 남편을 산에 묻고 

땅을 치며 돌아오니 여든 둘의 시어머니가 문에 섰다 하시는 말" 

-이종문<밥도>


시의 전문(全文)이 그래.  

‘밥을 줘’도 아니고 그냥 ‘밥도’야. 

허기처럼 창자가 찌르르 하더군. 

무슨 말을 더 하겠어. 





"매화가 피어서

남자는

차마 어쩌지를 못하고 흰 꽃나무 밑을 서성거렸겠다


밥을 짓고 나물을 무치고

고촌 여자는

둥근 접시 위에 붉은 매화 한 가지를 꺽어 올렸겠다"

-유홍준<고촌高村> 


요즘 그런 사랑이 어딨어, 코웃음치거나 밀쳐놓지 마. 

따뜻한 밥 한끼 나눌 수 있으면 그까이 꺼, 사랑.





“식탁을 보라

죽지 않은 것이 어디 있는가

그래도 식탁 위에 오른 푸성귀랑

고등어자반은 얼마나 즐거워하는가

(....)

이빨과 이빨 사이에서 터지는 식탁의 즐거움

아, 난 누군가의 밥이 되었으면 좋겠네“

-정철훈<식탁의 즐거움>


세상에나. 

나는 한번도 자청해서 누군가의 밥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 보지 못했어. 

내가 누군가의 밥이 될까 그것만 걱정했지 뭐야.





"한겨울, 서울역 지하도를 지나다가

한 노숙자가 자고 있던 동료를 흔들어 깨워

말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먹어둬!

이게 마지막일지 모르잖아"

-고영민<끼니>


밥,을 그렇게 마지막처럼 먹어야 하는

공동체가 있다면 무언가 크게 잘못된 게 분명해!





"밥 냄새는 구수하다

참 사랑은

먹는 자가 먹히는 자가 되는 거여

밥이 되는 거여, 라고

아직 밥이 되지 못하고

낱낱의 쌀알로 맴도는 아들에게

밥되기를 가르치시는

나의 어머니, 나의 예수여!"

-고진하<사랑의 밥>


밥이, 나의 예수고 부처인 거 맞아요.

아아, 밥 같은 그대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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