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에서의 최후 진술 중에 눈물을 떨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질박한 삶의 소유자든 화려한 삶의 이력을 가진 사람이든 별 차이가 없습니다.
그 동안 자신이 살아온 삶의 편린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가면서
‘바로 지금의 현실’이 회한으로 다가오는 까닭이겠지요.
사후세계를 경험했다는 사람들의 경험담에도 이와 유사한 부분이 있습니다.
영혼이 몸을 빠져나온 직후에 자신이 살았던 일생이 ‘영화 필름처럼’ 눈앞에 죽 펼쳐진다는 겁니다.
자기가 살아온 생을 주연 배우가 아닌 객(客)의 처지에서 적나라하게 보게 되는 경험,
그 순간 인간의 마음속에는 어떤 파장이 일겠지요.
인생의 동쪽에서는 알 수 없었던 일들이 서쪽에서 그 모습을 드러내게 되고,
삶의 ‘서쪽 경험’은 흔히 눈물과 동행합니다.
눈물 방울과 함께 도달할 수 있는 곳, 그곳이 바로 서방정토가 아닐는지요.
*옷으로 치자면, ‘단순함을 바탕으로 세련미’가 당대 최고라는
조르지오 아르마니에 비견할 만한 영화를 한 편 봤습니다.
물론 철저하게 저의 개인적 의견이라는 사족을 달아야겠지만요.
지난주에 개봉한 <마이애미 바이스Miami Vice>는 <밀리언달러 베이비> 같은 작품성이나 <송환> 같은 가슴 저린 사실성 혹은 <벤허> 같은 고전성이 있는 영화는 아닙니다. 마이애미라는 도시를 중심으로 팀을 이룬 두 경찰이 마약 범죄에 맞서 싸우는 형사 영화입니다. 어떻게 보면 특별한 언급이 필요 없을 만큼 전형적인 할리우드 상업 영화일 따름이지요.
하지만 제가 보기에 <마이애미 바이스>를 연출한 마이클 만 감독의 “감각”은 절정입니다.
한 영화 기자는 <마이애미 바이스>의 영화적 문장에는 형용사와 부사가 없다고 표현했더군요.
120% 공감합니다.
절제된 대사와 감각적 영상, 팽팽한 긴장감과 아무렇지 않은 듯 쓱 내보이는 그 고급한 세련미라니……
마치 숨 막히게 매혹적인 남자(혹은 여자)를 볼 때처럼 영화를 보는 내내 가슴이 울렁거렸습니다. 영화가 중간쯤 왔을 때 다시 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영화가 끝난 후 성별과 연령의 차이가 적지 않았던 우리 일행은 만장일치로 영화를 한 번 더 관람했습니다.
같은 영화를 보고도 사람마다 다른 ‘각’을 세울 수 있는 영화라는 장르의 속성상 더구나 스크린 쿼터 문제로 갑론을박이 오가는 상황에서, ‘미국 영화’ 얘기를 하는 게 어떨까 하는 망설임이 없지 않았지만, 그 감흥을 인내하기 어렵네요.
개인적으로 마이클 만 감독의 열혈 팬이기도 하지만, 이제 60대 중반에 이른 노장의 솜씨는 거의 ‘감각의 장인’이라 할 만합니다. 마이클 만 정도의 감각과 그것을 빚어내는 멋진 솜씨, 완벽 추구성이 있다면, 그게 아무리 겉멋이라도 매혹되지 않을 도리가 없겠지요.
혜신+명수